오늘 우리는 경기도의 예술가로서, 깊은 슬픔과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펜을 듭니다. 평생을 바쳐 아름다움을 빚고, 사람들의 마음에 위로를 전하는 것을 소명으로 삼아온 우리에게, 경기도의 이번 결정은 참담함을 넘어 비통한 심정마저 들게 합니다.

경기도는 2026년 경기문화재단의 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했습니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재단의 '기본재산'을 사용하라고 합니다. 저희에게 이 기본재산은 27년 전, 경기도 문화예술의 미래를 위해 선배들과 도민들이 함께 심은 한 그루의 나무와 같습니다. 우리는 그 나무를 결코 베지 않고, 해마다 열리는 작은 열매만을 나누며 척박한 땅에서도 창작의 씨앗을 다시 틔워왔습니다.

이것은 예술의 미래 세대를 위한 약속이자 최소한의 신뢰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 나무의 기둥을 베어 당장의 땔감으로 쓰라고 하시는 것은, 지난 27년의 역사를 부정하고 미래를 향한 약속을 저버리는 일과 다름없습니다.

우리는 경기도의 재정적 어려움을 외면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해법이 왜 항상 문화예술의 목을 조르는 방식이어야 합니까? 가장 먼저 문화예술의 예산을 없애고, 그 미래 자산까지 손대려 하는 방식에는 깊은 실망과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재정 운용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기도가 그 책임을 가장 연약한 토대 위에 서 있는 예술가들에게 떠넘기는 것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이는 경기도가 문화를 어떻게 인식하고 예술가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와 같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예산을 무기로 길들이려는 행태는, 문화를 존중하는 동반자가 아니라 통제하려는 관리자의 모습일 뿐입니다.

무대가 비고, 캔버스가 빛을 잃으면 그 피해는 단지 예술가들에게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결국 우리 아이들이 누려야 할 상상력의 기회를 빼앗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도민들의 마음에서 위로와 감동이 사라지는 것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우리는 경기도에 단호히 요구합니다.

하나, 경기도 예술인들의 산소마스크를 떼어버리는 '사업비 0원' 예산안을 철회하고, 경기도의 무능으로 초래한 재정 파탄의 책임을 예술인들에게 전가하는 비겁한 행위를 즉각 중단하길 바랍니다.
둘, 미래 세대와의 약속인 기본재산을 지키고, 문화재단의 독립과 자율성을 보장하며 문화예술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셋, 일방적인 통보가 아닌, 예술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진정한 소통과 협의의 장을 열어야 합니다.

부디 경기도가 문화의 가치를 경시하는 지자체라는 오명을 쓰지 않기를, 그리고 예술가들과 도민들의 절박한 호소를 외면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저희는 경기도가 문화예술의 든든한 동반자로서, 미래를 내다보는 현명한 선택을 내리기를 끝까지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2025년 11월 12일

경기아트콜렉티브 예술가 일동